자각몽
흔히 '자각몽'이라 부르는 꿈, 알지? 꿈에서의 모든 것들을 내가 원하는대로 통제가 가능한 거.
처음 자각몽을 꿨던 날, 꿈속에서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들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생생했어.
잠에서 깨 부모님께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냥 꿈일 뿐이라고 웃어 넘기시더라고.
어렸던 난 부모님 말씀대로 그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꿈을 자주 꾸고, 그 꿈을 오래 기억하는 정도의 평범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어. 아니, 조금 뛰어난 정도?
그런 꿈을 일 년에 한두 번 꿀까 싶었는데, 반 년에 한 번, 한 달, 일주일, 그리고 매일 꾸게 될 쯤.
내가 꾸던 꿈들이 그저 꿈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어.
어느 한여름 밤, 그날 꿈에선 함박눈이 펑펑 내렸어.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분명 한여름이었는데 말이야.
정말 예쁘게 내리는 눈에 신이 난 강아지마냥 한참동안 밖을 뛰어다니다 문득 꿈에서 깼어. 이른 아침부터 눈이 떠지더라고.
그날은 참 이상했던 게 분명 평소보다 한참 일찍 깼는데도 컨디션이 좋은 거야.
그래서 매번 꿈나라 여행하느라 거르던 아침을 먹기로 했어.
부모님과 마주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는데 갑자기 어제 꿈이 떠올랐어.
함박눈이 예쁘게 펑펑 쏟아지던 꿈. 잔뜩 들뜬 기분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지.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눈꺼풀 위로 무언가 톡 떨어지기 시작했어.
"이게 뭐야…? 눈?"
"… 애쉬."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어 보니 방 안에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한 거야.
꿈인 줄로만 알았던 것들이 현실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한 거지.
그제서야 깨달았어. 세간에서 떠들썩하던 사이퍼, 나도 그 중 하나였다는걸.
"애쉬, 네 탓이 아니야."
"우린 네가 자랑스러워."
우리 부모님은 바빠지셨어. 사이퍼를 배척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당신들의 딸을 지키기 위해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셨거든.
그 덕분에 난 내 능력을 컨트롤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어.
그래서일까. 난 능력이 발현된 이후,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가 사이퍼라는 걸 후회해 본 적이 없어.
오히려 감사해. 어쩌면 드문 케이스일지도 몰라. 부모님의 전적인 신뢰와 사랑을 받았으니까.
응? 아, 물론 우리 부모님은 비능력자셨어. 그래서 더 매달리셨던 게 아닐까. 주변의 시선을 아니까.
엄마가 가장 친했던 친구의 아들 중 한 명의 능력이 발현됐었거든.
마을도 저주를 받을 거라고, 몰매를 맞으며 쫓겨나던 걸 막지 못하셨어.
그걸 아직도 후회하고 계시는 것 같아. 자신의 친구를 도울 수가 없었다는걸.
그렇지만 그건 엄마의 잘못이 아니잖아.
음…, 나도 무섭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때의 상황을 내가 주인공이 되어 다시 겪게 되는 건 아닌가 했거든.
내 능력으로 인해 부모님께 상처를 줄까 봐.
어찌 되었든 결론적으로는 좋게 해결 됐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 아닐까?
시간 여행자
푸르던 잎들은 다 지고 낙엽마저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언덕 위를 뒤덮어가기 시작했고, 난 곧 성인을 앞둔 때였어.
날도 추워졌으니 사람들도 없겠다 싶어 ㅡ인적이 드문ㅡ 비밀 장소로 들뜬 걸음을 옮겼어.
거긴 봄이 되면 마치 함박눈이 내리듯 벚꽃이 흩날려서 정말 예쁜 곳이었거든.
마침 날도 저물기 시작해 노을이 졌으니 벚꽃을 피우면 더 예쁘지 않을까 싶었어.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곤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대어 눈을 지그시 감았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풍경, 벚꽃이 가득 핀 꿈.
그러자 내가 기대고 있던 나무를 중심으로 주변의 모든 나무들에서 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했어.
타이밍 좋게 바람도 불기 시작하니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렸고.
있지, 그날의 꿈은 지금까지 내가 그려낸 꿈 중 단연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매 순간 그 풍경에 함께 살고 싶을 정도로.
감았던 눈을 뜨니 눈 앞에 웬 인영 하나가 나타난 거야.
당황할 새도 없이 나타나서인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
한참을 멀뚱히 바라보다 그제서야 정신이 드는 거야.
당연히 깜짝 놀라서 그 사람의 어깨를 밀어냈어.
"그… 미안해요!"
"아니 해코지 하려던 건 아니니까 겁먹지 말아요!"
그도 이곳에 나타날 줄 몰랐다는 듯 당황한 얼굴이었어.
그와 난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마주보고만 있었고.
파랗고 예쁜 눈을 동그랗게 뜨곤 나를 바라보던 그는 나에게 이 상황을 이해시키려 횡설수설 말을 시작했어.
"제 이름은 헨리 맥고윈! 능력자예요! 그 혹시… 여기가 몇 년도인가요?"
이름도 얼굴도 낯이 익은 거야.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이 자꾸 들더라.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데 그제서야 생각이 난 거야.
더 다이아몬드 회장의 손자 헨리 맥고윈이라는걸.
"그, 제프 케이트 교수 손자…?"
그는 내 질문에 머쓱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
아침에 보았던 신문 속 사진의 사람이 눈 앞에 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당황스러웠어.
그런데 그가 능력자라는 소리는 듣지 못했던 것 같은데.
아니, 그보다 사진 속의 모습에서 더 성장한 듯한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이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졌지.
나도 같은 능력자니 그가 능력자라는 사실은 크게 놀랄 부분이 아니었지만, 세간에 알려진 모습보다 한참 성숙해진 모습이라니.
궁금한 게 많아졌어. 정확히는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던 것 같아.
시간을 여행한다는 능력자가 그였던 걸까.
질문을 꺼내려던 찰나, 오늘 일은 비밀로 해 달라며 그가 내게 새끼 손가락을 내밀어 왔어.
얼떨결에 손가락을 걸어 준 거야. 내가 하려던 건 이게 아닌데!
"그 저기…!"
다음 말을 위해 입을 채 떼기도 전, 그는 '나중에 또 만나요.'라는 한 마디만을 남기곤 다시 눈앞에서 사라졌어.
정말 뭐였을까? 물론 그때 이후 그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어.
그렇지만 그의 말이 맞다면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재회
여러 계절이 바뀌었고,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건 한참이 지난 후였어.
다시 만난 그는 날 기억하지 못하더라.
어쩌면 당연한 걸까. 내가 만났던 그는 내가 다시 마주한 그보다 훨씬 후의 그를 만난 것 같았거든
"누구…세요?"
"전 아실리 아델라인이에요. 능력자고. 당신이 제게 했었던 약속을 지키러 왔어요."
당황스럽다는 듯 날 바라보는 표정이 마치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와 닮아있었어.
왜인지 모르겠지만 웃음이 나는 거야.
이유 없는 내 웃음에 그의 머리 위엔 물음표가 떠오른 것 같았어.
지금의 상황도 눈 앞의 나도 그는 처음 겪을 테니까.
그 후론 그와 마주하는 날이 잦았어.
정말 우연히 광장에서 마주하거나, 내가 그를 만나러 가거나 혹은 그가 나를 만나러 오거나.
가끔은 약속을 잡고 만나기도 했지.
그리고 많이 후에, 그와 내가 더 가까워진 후에 알게 된 이야기인데.
나만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갔던 게 아니었어.
미래의 그가 과거의 나를 만나러 왔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뫼비우스의 띠 같은 우리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과거의 날 만나러 갔었다고.
정말 웃기지 않아? 우리의 만남은 도대체 어디가 시작점일까?
생각해 봤는데 말야.
나는 우리가 만났었다는 이야기만 했을 뿐.
어디서 어떻게 그와의 처음 만났던 건지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그는 어떻게 날 만나러 온 걸까.
어쩌면 그가 과거의 나를 만나러 왔던 것도, 지금의 내가 그를 만나러 갔던 것도.
어떤 감정으로부터의 시작이든 서로가 서로에게 한 걸음씩 내디뎠으니, 그 한 걸음으로 인연이 시작된 게 아닐까?
그런 말이 있잖아,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우린 만났어야 할 운명이었고, 마음 한편에서 서로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고.
악몽
그날따라 꿈자리가 사나웠어.
원하는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던 나의 세계에서, 내 의지가 없었던 날은 능력이 발현된 후 그날이 처음이었거든.
평소처럼 그를 만나러 가기 위해 액세서리함을 열었어.
분명 잠에 들기전 보관해뒀던 피어싱이 보이지 않는 거야.
그에게 처음 받은 선물인데 잃어버렸을 리가 없잖아.
아니, 애초에 이건 내 꿈이잖아.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은 일어날 리가 없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문을 열어 부모님을 불렀어.
왜인지 그날따라 집은 고요하기만 하더라.
그래도 어쩌겠어, 그와의 데이트에 늦을 순 없으니.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마지막 채비를 끝낸 후, 시간을 보려 손목 시계를 확인했어.
5시 35분.
이 시간일 리가 없는데. 너와의 약속 시간은 분명 정오였는데 말이야.
어째서 시계는 이른 아침, 아니 어쩌면 저녁 시간을 향하고 있는지.
하지만 창밖의 해는 시계가 잘못되었다고 말을 해 주었어.
해는 중천이었고, 약속 시간에 늦진 않은 것 같았어.
찝찝한 마음을 접어둔 채 약속 장소로 향했지.
저 멀리 그의 모습이 보였어.
금방까지 있었던 일들이 마치 없었던 것마냥 사르르 녹아 사라졌어.
그와 점점 가까워지고 그의 손을 잡으려던 순간 꿈에서 깨 버렸어.
새벽 3시 26분. 악몽이었나 봐.
마지막 인사
내 기억 속 끝자락의 이야기를 해 보려 해.
아무에게도 한 적 없었던.
악몽을 꾼 날, 결국 잠에 들지 못한 채 해가 떴어.
이상하리만치 개운한 느낌인 거야.
마치 아무런 꿈을 꾸지 않고 푹 잠에 들었다 깬 것처럼.
그날은 최근 입은 적 없었던 원피스를 꺼내 입었어.
너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입었던 그 옷 말이야.
날 닮아 잘 어울린다고 네가 정말 좋아했던 그 옷.
기분이 그랬어. 오늘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모습보다 네 기억에 남을 모습이어야 한다고.
그래서일까, 약속 장소도 처음 만났던 언덕 그 나무 아래였고.
꿈에서처럼 네 모습이 보였어.
이유는 모르겠는데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갈수록 자꾸 눈물이 나려는 거야.
애써 웃었어.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처럼.
평소와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그리고 너와 나인데.
오늘은 달랐어. 너도 나도.
언제나 내게 먼저 손을 내밀었던 너인데.
여느때와 같은 얼굴로. 아니, 조금은 슬퍼 보이는 얼굴로 날 보며 웃기만 했어.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어 우린.
문득 널 다시 보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
불안한 예감은 왜 틀리질 않을까.
그렇지만 널 붙잡을 순 없었어. 넌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내게도 말하지 못한, 어쩌면 이미 나도 알고 있는 그 일을.
미래를 바꿔야 한다고, 그래서 지켜야 한다고. 캐럴을 그리고 나를.
언젠가 어렴풋이 말했던, 우리들의 시간을 지키고 싶다던 너는 그 일을 하러 가는 거겠지.
근데 헨리, 있지. 난 아직도 그날을 후회해.
가지 말라고 붙잡고 매달려 볼걸.
날 혼자 남겨두고 가지 말라고.
나 네 얼굴이 희미해져 가.
그렇게나 사랑했던 넌데.
예쁜 네 미소를 사랑했던 난데.
오늘도 내 꿈에 찾아와 줄 생각은 없는 거지?
헨리, 보고 싶어. 한 번만. 딱 한 번만 꿈에 나와 줘.
프로필
관찰
그녀의 밝은 성격은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했다.
어느 시간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것 같다는 말이 돌고 있는데.
어쩌면 그녀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능력
꿈을 구현화하는 능력.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를 환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그가 구현해낸 것들은 실체에 가까우며, 물리적인 영향력도 줄 수 있다.
관련사건파일
4705416, 헨리 맥고윈 부검 보고서 (매트 엡스타인, 법의학자)
이름: 헨리 맥고윈
능력: 시간 능력자
사인: 심장 부분에 총알이 관통해 생긴 상처가 있다. 총 3발을 맞은 것으로 보이며, 신체 앞쪽에서 3발의 총기 사고가 났지만, 우연히도 총기 사고와 동시에 심장이 마비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둘 중 어떤 것이 사망의 직접적인 사인이었는지는 밝히기 어렵다.
장소: 거의 같은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목격자가 드러났다. 영국의 포트레너드와 미국의 버지니아, 사이코 매트리를 통해 목격자 두 명의 진술 모두 진실로 밝혀졌다.
7091935, 지키지 못할 약속(나이오비와의 대화)
장례식장에서 돌아온 날, 그가 저를 만나러 왔어요. 꿈에서요. 그의 이름을 부르고, 손을 맞잡고, 마주보며 웃고. 정말 행복했어요. 그래서 더 깨기 싫었던 것 같아요. 제가 알던 모습 그대로였으니. 지금 눈 앞의 그가 현실이고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게 꿈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어요. 그러다 문득 느껴지는 괴리감에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애써 밝게 웃어 보이는 제 모습을 따라 슬픈 미소를 지었어요. 마치 제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났던 그날처럼요. 헨리는요, 약속은 반드시 지켰던 아이인데 마지막 그날엔… 반드시 돌아오라는 제 부탁에 대답해 주지 않았어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고 싶지 않다고 늘 이야기했었거든요. 돌아오지 못하면 저와 한 약속을 어기게 되는 거니까…. 사실, 아직도 믿고 싶지 않아요. 너무 보고 싶어요…. 잉게, 저 정말 어쩌면 좋죠…?
72140819, 꿈을 꾸는 사람 (실리아, 인형사)
아실리 아델라인. 그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내 인형을 아이들과 사러 왔을 때였어요. 그때는 손님과 주인장으로 인연이 끝날 줄 알았는데, 일을 어느 정도 끝내고 휴식을 하러 간 카페에서 손님과 손님으로 또 만날 줄은 몰랐죠. 그 일을 계기로 대화를 나눠 보니 아실리는 정말 긍정적이고 발랄한, 아주 사랑스러운 사람이더라고요. 플러스, 지금 매우 달콤한 짝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까지 사랑스러움의 극치를 찍었죠. 안타깝게도 유럽 전체를 돌아다녀야 하는 일정이 있었던 저는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영국을 떠야 했어요.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꼭, 행복한 소식으로 반겨 주기로 약속을 한 뒤 그곳을 잠시 떠났죠. 이후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는데, 다시 방문한 영국에서 제가 들은 건 행복한 소식 따위가 아니었어요. 연합의 꿈 능력자가 자신의 능력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소문에, 설마 해서 찾아갔더니 설마가 사람 잡는다잖아요. 맙소사, 몇 달만에 본 아실리는 처음 만났을 때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어요. 저는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 어느 정도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더는 알고 싶지 않았어요. 제 가까운 사람이 그런 일을 겪는 것은 더더욱 바라지 않았고요. 사랑스러운 애쉬는 사랑스러울 여유를 잃었어요. 겨우 잠에서 깨어나 저를 보는 그 눈동자를 보고 알았어요. 처음 만났을 때 나누었던 웃음, 활기, 빛, 그 어떤 것도 비치지 않더군요. 그래요, 아실리는 말 그대로 꿈 속에서 살고 싶어했어요. 현실을 부정하고. 현실을 힘겨워하면서. 나는, 애쉬가 바라는 걸 이루어 줄 수 없었어요.
관련문서
악몽이라는 건, 오히려 아름다운 꿈일 때 벗어날 수 없는 게 아닐까?
소중한 사람을 잃은 시간을 기점으로 그녀의 시간은 멈춰버린 것 같다.
그녀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건 단 한 사람이지만,
시간을 잃게 한 것도 그 사람이라 되돌리기엔 이미 늦어버린 것 같다.
꿈속에서의 원하는 모든 것들을 구현화 할 수 있는 능력은 분명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능력이다.
사랑했던 순간을, 그리고 누군가를 다시 볼 수 있을 테니.
하지만 꿈을 그저 꿈으로 보지 않는다면 불행을 자초할 뿐이다. 설령 그게 그녀 자신일지라도.
완벽하게 현실로 돌아오지 않는 이상,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성격
사교적이고 친화력이 좋다. 그녀의 밝고 활발한 성격은 다른 사람에게도 호영향을 끼친다.
본인 감정에 충실해 좋고 싫음이 분명해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일이 잦다.
그러나 최근, 과거보다 차분해진 듯 보인다.
문득 선을 긋는 듯한 행동을 보이거나 우울해 보이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아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그녀가 자신을 바꿔가고 있는 것 같다.
관계
호감을 갖기 쉬운 성격 탓에 주변인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제프 케이트의 손자 헨리 맥고윈과 특별한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캐럴라인 맥고윈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캐럴의 거부 반응 때문인 건지 선을 지켜 주고 있는 것 같다.
과거 만났던 인연들과는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녀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녀와 선을 유지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 드관 목록
실리아
- 피터, 엘리와 함께 산책을 나갔던 날의 트와일라잇 광장에서였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엘리가 제 손을 뿌리치고 어딘가로 달려나갔다. 깜짝 놀라 피터를 안아들고 엘리가 향한 곳으로 뛰어가자 인형극을 하고 있는 제 또래 아이가 보였다. 인형극에 정신이 팔린 엘리 옆에 피터를 내려 주곤 함께 구경을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인형극이 끝나자 엘리가 주인공 인형을 사 달라며 조르는 탓에 지갑을 꺼내들었다. 돈과 함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자 '다음에 또 만나자'라는 그의 대답이 돌아왔다. 인형을 또 사러 오라는 이야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신이 난 엘리와 피터의 손을 잡곤 연합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알바를 마친 후 오랜만에 옆 건물에 있는 로엘의 카페를 방문했다. 간만의 여유를 즐겨 볼까 싶은 마음에 커피를 시키곤 창가 구석 자리에 앉았다. 천천히 카페를 둘러보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얼마 전 인형극을 하던 그 아이였다. 아는 척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먼저 건네온 그의 인사에 짧게 목례를 했다. 그러자 제 앞자리에 앉으며 이것도 인연인데 앞으로 인사하는 사이하지 않겠냐는 그의 말에 흔쾌히 수락했다. 그의 말대로 이것도 인연이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한참을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사소하게 시작된 이 인연이 얼마나 깊어질지도 모른 채 그와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헨리를 잃기 전에도 그리고 후에도, 저를 먼저 찾아 온 건 그였고, 무너져가는 제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던 사람도 그였다. 그저 아무 말 없이 힘이 되어 준 사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제가 무너져 밑바닥을 헤매여도 제 손을 잡아 줄 사람이라고, 그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보여 주어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그런 확신이 들었다.
맥 라이너스
- 그와의 첫만남은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다. 헨리를 만나기 위해 호라이즌에 잠시 들렀던 날,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헨리의 말에 응접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앉아 있을 때였다. 등 뒤로 들리는 우렁찬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처음 보는 사람이 제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순간 너무 놀라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로 인사를 받자, 제 표정을 보곤 급히 상황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케니스 씨의 후배라고 소개를 하며, 형의 안부 편지를 라이언 군에게 전해 주러 왔다고.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애초에 호라이즌에 출입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그의 신분이 증명됐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니까. 그 날 이후 그와의 만남은 왠지 모르게 잦아졌다. 인사를 나누고, 사소한 일상 이야기를 하고.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선을 넘지도 않는 딱 그 정도의 관계가 이어졌다. 그렇게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걸 잃었고, 많은 것들이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그는 변하지 않고 언제나 함께있어 주었다. 시간의 힘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걸까. 왠지 모르게 그에게만큼은 다 털어놔도 괜찮을 거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힘이 들 땐 항상 곁에 있어 주었고, 자신을 웃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었기에 더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헨리가 생각나 힘든 날이면 꼭 그를 찾아갔다. 이런 자신의 행동이 그에게 얼마나 상처일지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언젠가 그가 질문을 해 온 적이 있다. 헨리에게 희망을 품고 있는 거냐고, 아니면 버리지 못한 미련인 거냐고. 헛된 희망과 미련이었다. 그걸 알고 있었음에도 부정해 온 시간들을 다시 한번 자각하자 왈칵 눈물이 났다. 그렇게 그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어느샌가 우리의 감정의 폭은 달라져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달랐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 자신에겐 그는 여전히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자 아끼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 이상의 관계는 될 수 없었다. 아직 헨리를 놓지 못한 내가 누군가의 손을 잡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만약, 정말 만약 헨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옆자리에 있게 된다면 그일 거라고.
리아
- 꽃집으로 출근하는 길, 벤치에서 앉아서 쉬고 있는 한 아이가 눈에 밟혔다. 아는 사이도 아닌데 그냥 지나갈까 하다 계속 마음이 쓰여 다시 벤치로 돌아왔다. 아이 앞에 멈춰서선 가방에 챙겨다니던 물병과 손수건을 건넸다. 생각지 못한 호의에 경계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던 아이에게 짧은 목례를 하곤 다시 꽃집으로 향했다. 며칠 후, 여느 때와 같이 알바를 하고 있던 도중 누군가 꽃집으로 찾아왔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저번에 도와 준 것에 대한 답례라며 작은 선물을 내미는 것이었다. 어리둥절해져 가만히 바라보다 금새 정신을 차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이름을 물었다. 뭔가 고민하는 듯 보였지만, 결론적으론 "리아"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도 무언가 보답을 해야 할 것 같아 작은 꽃다발을 선물했다. 메리골드, 꽃말은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그 아이에게 항상 행복한 일들만 가득했으면 싶어서였다. 언제든 놀러와도 된다는 말에 그는 자신이 나쁜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러냐는 질문을 했다. 자그마한 호의에도 보답을 할 줄 아는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나쁜 사람일리 없지 않냐며 웃어보였다. 퉁명스럽지만 애정이 담겨 있는 듯한 말에 마치 캐럴이 생각나 무의식적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깜짝 놀라 아는 동생에게 하던 버릇 때문에 실수한 것 같다며 사과를 하자 아무 말 없이 저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당황한 듯 어쩔 줄 몰라하자 더 쓰다듬어도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 귀여운 아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가끔 만나는 일이 생겼고, 그때마다 쓰다듬어 달라는 행동에 마치 동생이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소중한 인연이 하나 더 늘어났다.
로엘 아이리스
- 아르바이트를 다니는 꽃집 옆에 카페가 하나 있다. 카페 자체를 자주 가는 건 아니었지만,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피터가 미쉘 말고도 소중하게 여기는 누나가 꽃집 옆 카페에서 일한다고. 그날은 아르바이트가 오전에 끝나 여유 시간이 생겼던 날이었다. 애정 표현이 서툰 피터와 미쉘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기도 했고 여유 시간이 남기도 해, 인사라도 나눌까 싶어 카페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예쁘게 웃으며 손님들을 맞이해 주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아, 다정하고 예쁜 사람이구나. 첫인상이 그랬다. 그의 다정함 때문인지 덩달아 제 기분도 좋아졌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고민을 하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며 슬며시 말을 걸었다. 연합에서 피터를 돌보고 있고, 옆 꽃집에서 일하고 있다고. 그러자 반가워하는 기색이 보였다. 짧은 대화를 나누고도 알 수 있었다. 왜 피터와 미쉘이 그를 사랑하는지. 그날 이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시간이 남는 날이면 그의 카페에 들러 시간을 보내곤 했다. 가끔은 그가 카페를 꾸밀 꽃들을 사러 꽃집에 오기도 했고, 그의 애인이 방문해 그에게 선물해 줄 꽃다발을 사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예쁜 꽃말이 담긴 꽃들을 한가득 포장해 주곤 했다. 많은 이야기를 하진 않았지만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고 웃고 떠들고.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즐겁고 행복했다. 그와 함께할수록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 오랜 시간동안 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것까지도.
디안 그레이스
- 저스티스 리그가 괴멸했다는 소식이 들린 후, 연합에 온 새로운 사람이었다. 아직 그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 듯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였다. 소중한 것들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 어쩌면 저와도 많이 닮아 있었다. 그래서일까 마음이 더 쓰였던 것 같다. 먼저 다가가 대화도 걸어보고, 도울 수 있는 임무가 있다면 돕는 등 연합에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런 제 마음에 보답하듯 그도 마음을 여는 것 같았다.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원래부터 다정한 사람이었구나를 깨달았다. 하지만 모두에게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언제든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 온전히 마음을 주고 받지 못했다. 때문에 서로의 선을 넘지 않는 조심스러운 관계였다. 누군가에게 쏟는 다정함과 애정을 아는 서로이기에, 함께 쌓아올린 추억의 벽들이 무너져 내렸을 때 겪을 절망을 알기에, 서로에게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저 친한 언니 동생 사이, 제가 유일하게 언니라고 부르며 따르는 사이. 하지만 서로에 대해 물으면 쉽게 입을 열 수 없는 그런…. 그럼에도 함께 시간을 보냄에 있어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았다. 서로에게 작은 힘이라도 되어 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했다. 다만 언젠가 서로를 잃지 않기를 그것만 간절히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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