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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eam 💜/SOMNIUN:: Ashley Z. Adeline

[헨리 x 아실리] 발걸음

by 김지냐 2024. 3. 17.

w. 레스 님 CM
(원문 https://jacks2iriss2clive.tistory.com/m/182)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 그 시간을 붙잡기만 한다면, 내가 모든 것을 바로잡기만 한다면, 실패하더라도 또다시 시간을 돌려 돌아갈 수 있다면 이제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망가질 일 없이. 네가 원치 않는 싸움에 휘말려 고통받는 일 없이, 그저 평화롭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올 테니까.

그 곁에 자신의 존재는 있는가? 그 물음에 답하자면 대답은 할 수 없다. 아마, 아마도 나는...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다. 손 하나 까딱거리는 것 조차도 온몸에 무겁게도 늘어진 실이 저를 사방에서 잡아당겨 짓눌러내리는 것 같았다. 내뱉는 숨 하나조차도 무거워 이대로 자신이 땅으로 처박혀 영영 일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희들의 그림자가 내 발목을 붙잡아. 너희들의 존재가 나의 숨을 붙잡아.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없어진다면 누가 그 아이를 지키지? 누가 그 아이의 아픔을 알아주며 위로해주지? 홀로 폭풍이 몰아치는 밤 잠이 들면 누가 괜찮다며 진정시켜 주지? 그 아이가 슬퍼할 때 누가 곁에서 버틸 수 있게 해 줄 수 있지?
누가 그 아이의 삶이 외로운 겨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지? ...아실리가? 그렇다면, 아실리는?

아실리의 고통은? 슬픔은? 눈물은? 강하면서도 아름다운 아실리. 영원불멸한 우주, 시간, 숨. 아실리.

첫 만남을 기억한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을 알고 내게 다가와 준 너의 찬란함을 기억한다.
너의 다정함을, 강함을, 두려움 없이 뻗어주던 그 손길을, 찬란하던 너의 미소가...

다시, 웃을 수 있을까? 너는 그 웃음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너는 두 번 다시 행복한 꿈을 꿀 수 없는 게 아닐까?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수도, 봄 같은 눈을 피워낼 수도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너는... 두 번 다시 꿈을 꾸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나는 너희들에게 아무것도 남길 수 없어. 나는 너희들에게 내 그림자를, 내 흔적을 남길 수 없어. 그게 헛된 희망이 될까 봐. 그게 헛된 지옥이 될까 봐. 너희들을 붙잡고 구렁텅이로 끌어들이고 있을까 봐. 내가 그 시간을 망칠까 봐...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다. 이대로 멈춰버릴 수 없다. 얼마나 헛된 걸음을 반복했던가, 얼마나 커다란 고통을 감내하고 밀치며 왔던가. 나는 포기하지 않아. 이대로 멈춰 서지 않아. 설령, 내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하여도.


늘 그랬다. 이건 어쩌면 오만함일지도 모르지. 이 여행이 끝나고 나면 내가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올 거라는 확신.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모를 거대한 오만함이, 지나친 안일함이 있었기에 본능적으로 알지 못하는 시간대에 떨어지는 두려움을 상기시킬 수 있었지만 왜 이번은 유독 이리도 불안한 걸까. 왜 이리도 손 끝이 떨리며 본래 내가 존재해야 할 시간에 땅을 딛고 있는 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잊고 있던 두려움의 파도가 커다란 해일이 되어 자신을 덮쳐온다.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숨이 심하게도 떨리며 타액이 칼날이 되어 자신의 몸을 헤집는 것처럼 느껴진다. 짙은 어둠이 저를 집어삼켜 저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곤, 두 번 다시 희망이란 조각 하나도 내어주지 않겠다는 듯 저를 깊은 무저갱으로 처박는다. 하지만 안다. 이건 내가 감당해야 할 업보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며 헛되게도 힘을 사용한 대가가 자신에게 덮쳐오는 것이다.
아아, 미약한 힘을 쥐고 완전하다 믿는 인간의 오만함이란...

시간을 움직이는 것. 그것은 어쩌면 신의 영역. 완전한 운명. 작은 '우연' 이라고는 없는 완전한 존재.

운명은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발악하며 발버둥 쳐도 나의 힘으로는 일어나게 될지도 모르는 그 미래를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발버둥 치면, 분명한 변화는 일어난다. 그래, 가령 내가 너를 만나게 된 일처럼.

너와 내가 만나게 된 것은 정말 운명이었을까? 나는, 먼 미래의 내가 간절히도 바라왔기에 내가 기어코 피워내고 만 이질점이라고도 봐. 애초에 나는 여행하는 것에 대해 '실수' 같은 것은 하지 않으니까.
그래, 그런 것처럼 될 수 있다면, 정말 작은 틈이라도 낼 수 있다면...

그러니 두려워도 맞서야지. 내가 너를 만난 '우연'처럼, 완벽한 소설의 엔딩처럼 작은 기적이 새로운 운명을 써나가기를.
그것으로 인하여 네가 다시 꿈을 꿀 수 있기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기를, 찬란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그저 행복할 수 있기를. 다시... ...웃을 수 있기를. 나를 처음 보며 지어주던 그 미소처럼, 먼저 내밀어주던 햇살처럼 내려주기를.

이기적이라고 할 것을 알아. 하지만 아실리, 캐럴. 나는 너희들이 내 곁에서 애써 슬픔을 삼키며 괴로워하는 것보다, 차라리 마음껏 울고 마음껏 웃고, 마음껏 화낼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 내가 만들어내는 작은 우연으로 너희가 살아갈 수 있다면,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으로 변화되어 간다면 나는, 이런 고통 따위....

하나도, 두렵지 않으니까.

나의 주어진 운명은 이것이야. 이것만큼은 변하지 않을 운명이다. 어떠한 작은 우연으로도 틈을 파고들 수 없는 순간이다. 나의 이야기의 마지막 장은 여기일지도 몰라.

그러니 완성해야지, 마지막 페이지를. 마지막 문단을. 완벽한 엔딩을....


 




타앙-!


죽음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자신은 죽음과 가장 가까운 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던 적이 있다.
시간은 흘러간다. 그에 따라 사람은 하루하루 죽어간다. 살아간다 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시간의 흐름이 뜻하는 것은 모든 것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죽음 사이에서 멋대로 오고 간 자신은 얼마나 죽음과 더 가까워져 있던 것일까. 섭리를 거스르는 대가란...

그래, 솔직히 나의 죽음이 어떤 식으로 다가올지는 몰랐지만, 이 순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도 믿었던 이의 손에...
아아, 배신당하는 순간에는 원통해야 하던가, 슬퍼해야 하던가,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다는 비통함에 절망해야 하는가... 캐럴, 할아버지를 너무 믿지 마. 이런 단어 하나라도 남겨두고 왔어야 했는가. 아니, 그렇다면 캐럴은 이유도 모른 채 내 말 하나만 믿고 그나마 있는 유일한 가족인 할아버지를 억지로 미워하며 멀리하게 된다면 그건 그 아이에게 너무나도 불행한 일이잖아. 그런 짓은 할 수 없어. 모든 불안과 고통은 오직 자신만이 가져야 하니까. 그러니까 나는 그저, 네가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조금이라도 행복하기를 바란 거야.

영원한 첫눈을, 매일이 크리스마스와도 같이 포근하게 지내었으면 하는데.

너는 네가 모두를 얼려버릴까 두려워했지만 나는 내게 단호하게도 말을 했었지. 아니, 네 힘은 모두가 기뻐하는 힘이야. 겨울이 왔음을 알리는 첫눈처럼, 크리스마스에 내리는 눈처럼 다정하고 부드러운 눈송이라고. 눈사람을 만들어가며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주는 행복한 순간이라고. 여전히 마찬가지야, 캐럴.

나의 작은 크리스마스, 나의 작은 겨울. 너의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게 많이 아쉽구나, 캐럴. 그럼에도 아실리가 곁에 있어준다면 좋을 거야. 너희 둘은 자매처럼 잘 지내왔으니까...

...
....
......

아, 아실리.


머릿속에 확연히 박히는 단 하나의 이름. 아실리, 아실리. 아실리. 나의 꿈. 나의 봄. 나의 우주. 나의 운명, 우연.

그 탓이었을까. 혹은 마지막 발악이었을까. 온몸이 뒤틀림을 느낀다. 이건 죽어가며 느끼는 고통이 아니다. 나는 이 감각을 아주 잘 알고 있어. 이것은...

깜빡, 눈을 깜빡이면 자신은 모든 것이 멈춘 듯 아무런 감각 없이 어떠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이건... ...어떠한 세계일까.

본능적으로 느꼈다. 내가 보고 있는 순간은 길지만, 실제로 흘러가는 시간은 느끼지도 못할 찰나일 것이며,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분명히 어딘가 뒤틀려진 탓에 보이는 다른 세계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아실리, 네가... 저렇게 커버린 내 곁에 행복하다는 듯 웃고 있을 리가 없잖아.

아, 안심해야 하는 걸까? 이 세계에서는 우리는 멀어지지 않았구나. 우리는 결국 두려움을 이겨내어 서로의 곁에서 살아가는구나.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는구나. 이 세계의 너는 너무나도 행복하구나, 불행이라고는 아주 조금도 없을 만큼...

...그럼, 나의 아실리는?
나의 세계의 너는?

너는,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나는 너의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데. 저렇게 너의 곁에 서서 너를 지킬 수 없는데. 너는 어떻게, 왜 하필 너는, 왜 하필 나는.

왜 하필, 우리는.

눈을 깜빡이면 또 다른 공간이다. 아, 알겠다. 이건 너야. 이건 내가 아직 만나지 못한 너야. 아니, 만날 수 없는 너의 모습이겠지만.

자신이 없다. 너는 웃지 않는다. 너는 애써 괜찮다는 듯 울음을 삼키며 무너진 듯 웃는다. 아실리, 아실리. 네 찬란하던 눈빛은 짙은 그림자가 져 두 번 다시 태양이 뜨지 않는 사막처럼 메말라간다. 부드럽고도 따스하던 손길은 메마른 고목처럼 말라 퍼석해져 무엇 하나도 어루만지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찬란하던 미소는 억지로 입꼬리만 올려 웃기에 기괴하게도 비틀렸다. 아아, 내가 너를 이렇게 망치고 마는구나. 내가 너를 기어코 망가트리고 마는구나, 나의 영원한 우주여.

그럼에도 너는 그곳에 있다. 눈을 깜빡이며 수 없이 바뀌는 풍경에도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은 너. 나의 영원할 불멸. 나의 영원할 운명, 전부. 나의, 지독한

사랑.

너는 여전히 나를 기다리며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나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은 채 기다리는구나.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주저앉을지라도 그곳에서 마냥 기다리지 않는다. 너는 여전히 나아간다. 나의 미련하게도 남은 하나의 흔적을 쥔 채로, 너는 여전히 살아간다. 눈부시게도. 아름답게도.


만약, 만약 내가 네게 사랑을 고했더라면, 겁쟁이처럼 숨기만 하던 이 마음을 기어코 네게 토했다면, 너는 무너졌을까? 혹은 그럼에도 내 사랑을 알았으니 후회는 없다며 더 강하게도 나아갔을까?


나는 이제야 조금 후회해. 하지만 내가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느껴져. 그러면 나는, 정말 너를 무너뜨렸을지도 모르잖아... 후회해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내가 네게 그렇게 커다랗고 중요한 존재로 자리하지 않았음에 조금이라도 감사하다고.

알아, 아실리. 너는 이대로 멈춰서 그 자리에 머물러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너는 생각보다 강하고, 아름다우며 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나는 알아. 물론 네가 다시 피어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나의 존재가, 미련함이 너를 너무나도 오랫동안 좀먹어가며 무너트리려고 하겠지. 그럼에도 너는 멈추지 않을 걸 안다. 너만은 사라지고 변해버리지 않을 것을 안다. 너만은, 나의 우연만은. 아실리, 너는.


멈추지 마, 가끔 돌아봐도 괜찮아. 하지만 그대로 뒤만 바라보고 있으면 안 돼. 너는 앞을 보고 나아가야지. 나의 온전한 우주로 존재하는 너이니, 너는 그대로 계속 흘러가야지. 나는 네 삶 찰나에 머물러 살아가겠지만 멀어지는 너를 바라보는 것 하나만으로도 행복할 거야. 그러니 살아가, 그러니 멈추지 마. 그러니 무너지지 마. 넘어지더라도 다시 꿋꿋하게 일어서. 너무 두렵다면 잠시 주저앉아서 마음을 가다듬어. 꿈을 꿔도 괜찮아. 억지로 행복한 기억으로 덮으려고 하여도 괜찮아. 그것이 너를 다시 일으킬 수 있다면. 하지만 너무 빠지면 안 돼. 너는 꿈에서 눈을 떴으니 나를 만날 수 있던 거야. 비록 꿈결처럼 아름답지 않은 시간이라도 괜찮아.

살아가줘, 아실리. 어떻게든 살아가줘. 나를 잊어도 돼.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거니까. 그대로 나를 돌아보지 않아도 돼. 내가 너를 끝까지 지켜볼 거니까.

그러니까, 살아가주면 좋겠어.

다시 만나자는 약속은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이번에 처음 어긴 거니까 봐주지 않을까? 너는 착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듯 넘어가주겠지. 아, 그래도 좋다. 마지막으로 네가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안녕, 아실리. 이제야 네게 인사를 건네는구나.

이제 꿈에서 깰 시간이야, 아실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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